소프트 로봇(soft robot)은 금속과 같은 단단한 소재 및 모터(motor)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하드 로봇(hard robot)과는 달리, 고분자(polymer)와 같은 유연한 소재로 이루어진 로봇을 일컫는다. 이러한 소프트 로봇들은 하드 로봇들에 비하여 가볍고, 유연하며, 부드러운 움직임의 구현이 가능하다. 특히, 소프트 로봇들은 복잡한 구조의 공간 혹은 제한된 크기의 공간에서도 사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독성 혹은 친환경 고분자 소재를 기반으로 생물과 유사한 부드러운 움직임의 구현이 가능하여, 동물 혹은 인간 친화형 로봇으로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Fig. 1).[1]
하드 로봇과는 달리 소프트 로봇이 지닌 경량성, 유연성, 생체적합성 등의 특장점을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 및 공학자들이 다양한 소프트 로봇 관련 기술들을 내놓았다. 그 들 중 몇 가지 예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전기활성 고분자(electroactive polymer, EAP)를 이용하여 외부에서 공급된 전류를 통해 고분자의 움직임을 선택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소프트 로봇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2, 3]
두 번째로는 열, 자외선, 수분 등과 같은 외부 환경적 요인에 반응하는 고분자(stimuli-responsive polymer, SRP)를 사용하여, 특정 외부 자극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소프트 로봇 기술이 있다.[4, 5]
세 번째 방법은 유체역학적 힘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소프트 로봇 기술로써, 공압식(pneumatic) 소프트 로봇이다. 참고로 공압식 소프트 로봇은 1950년대에 최초로 이 기술을 개발하고 발표한 미국의 물리학자이며 공학자인 Joseph Laws McKibben의 이름을 따서, McKibben 소프트 로봇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경우는 형태 혹은 사용되는 소재들에 따라 구체적인 작동 방식들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의 공압식 소프트 로봇들의 작동 원리는 유사하다. 우선, 신축성이 높으며 내부가 빈 공간으로 이루어진 고분자 구조체를 제작한다. 그리고 내부 빈 공간을 관(tube) 등을 활용하여 외부 펌프(pump)와 연결을 한다. 이때, 외부 펌프를 이용하여 공기 혹은 가스를 고분자 구조체의 내부 빈 공간으로 주입하거나 다시 흡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고분자 구조체의 팽창 혹은 수축을 선택적으로 유도할수 있다. 즉, 고분자 구조체의 수축 및 팽창 변형을 소프트 로봇의 작동 원리로 활용을 하는 방식이다(Fig. 1).
앞서 언급한 전기활성 고분자 혹은 자극 감응성 고분자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소프트 로봇들의 경우는 초소형 소프트 로봇 제작이 용이하며, 초경량으로 구현이 가능하다는 장점들이 존재하지만, 상용화에 도달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인 즉슨, 초소형 크기의 소프트 로봇 제작에는 유리하지만, 한 편으로는 동물 혹은 사람의 손, 발 등과 유사한 크기의 중대형 소프트 로봇 제작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 혹은 외부 자극에 의해 반응하는 고분자로부터 얻어지는 출력 힘이 아직 수백 μN에서 수 mN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비가역성을 내포하는 전기화학적 반응에 의해 작동하기 때문에, 수십 혹은 수백 번의 반복적인 사용에 따른 성능 감소의 정도가 크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리고 사용되는 전기활성 고분자 및 자극 감응성 고분자들의 합성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합성을 통해 얻어지는 고분자의 수율이 낮다 보니, 재료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에 반하여 공압식 소프트 로봇들은 상업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값싼 재료들인 polydimethylsiloxane (PDMS), EcoflexTM 등과 같은 고무와 유사한 성질의 탄성체(elastomer; 점탄성 성질을 지닌 고분자)를 활용하여 손쉽게 제작이 가능하며, 외부 펌프 용량에 따라 중대형 크기의 소프트 로봇의 제작도 가능하다(Fig. 4).
수 마력 이상을 지닌 고성능 펌프의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을뿐더러, 영률(Young’s modulus), 신축성 등과 같은 기계·유변학적 물성과 투명도, 색상 등과 같은 시각적 특성이 다양하고 값싼 탄성체들이 이미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 실제로, 비전문가들이 집에서 손쉽게 공압식 소프트 로봇들을 제작하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유튜브(Youtube) 혹은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소개하는 동영상과 글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더불어, 사용하는 펌프의 종류 및 탄성체에 따라 공압식 소프트 로봇으로부터 출력 가능한 힘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소형 펌프와 배터리 등을 사용하여 외부로부터의 전원 연결 없이도 독립적으로도 활동이 가능한 소프트 로봇의 제작도 가능하다(Fig. 5).
한편,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경우는 전기활성 고분자 혹은 자극 감응성 고분자 기반 소프트 로봇들에 비해서는 월등히 강한 출력 힘을 보여줄 수는 있으나, 주로 1 GPa 이하의 영률을 지닌 탄성체들이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몸체로써 사용되다 보니, 수십 kg의 고중량의 물체를 들어 올리거나 이동하는 것에는 다소 한계점을 보여왔다.
그러나, 오리가미(origami) 기술 등을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제작 과정에 접목시켜, 고중량의 물체도 효과적으로 들어 올리는 내용의 연구 결과들이 최근 보고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중량 혹은 출력 힘과 관련된 이슈들은 충분히 빠른 시일 내에 해결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1, 7]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만 살펴보면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이 가히 최고의 소프트 로봇기술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에서도 해결해야할 이슈들이 존재한다. 여러 이슈들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몸체로 사용되는 탄성체들의 경우, 이들이 지닌 탄력성과 내구성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동안 무한히 일정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펌프 시스템에 상시 의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펌프 사용을 통해 우수한 출력 힘을 얻을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소프트 로봇을 제작할 경우에는 로봇의 전체 무게가 증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펌프 및 펌프 작동을 위한 전원부가 차지하는 무게가 몸체부를 이루고 있는 탄성체가 지닌 무게에 비해 수에서 수십 배 이상 나갈 수밖에 때문에, 소프트 로봇의 전반적인 무게 배분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사실, 앞서 오리가미 기술 접목을 통해 중량 및 출력 힘과 관련된 이슈를 해결한 것처럼, 위 이슈들의 해결 방안들도 어느 정도 마련은 되어있다. 다만, 제시된 해결 방안들이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므로, 앞으로 폭넓고 깊은 연구들을 통해 극복이 되어야할 것이다.
첫 번째 이슈는 우수한 유변학적 물성 및 내구성을 지닌 탄성체의 개발과 자가치유(self-healing) 고분자 기술이 접목된 소프트 로봇 기술 개발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8] 탄성체의 탄력성과 내구성은 유변학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경향이 있다. 탄성체의 탄력성을 높이면 반대로 지속적인 사용을 위한 내구성은 떨어지므로, 용도에 따른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과 동시에, 신기술을 통해 탄력성과 내구성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이슈는 펌프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발이다.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특성상 공기 혹은 가스의 유체역학적 힘은 반드시 수반이 되어야 한다. 다만, 펌프 사용 없이도 이러한 유체역학적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기술의 도입이 가능하다면, 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무게를 효과적으로 조절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4년간 이와 관련된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을 연구 중에 있다. 소위 열공압식(thermo-pneumatic) 소프트 로봇으로 불리는 기술이다.
참고로 아래 소개하는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은 필자와 필자의 동료 연구원들이 2018년에 처음으로 개발하고 소개한 기술이다. 우리가 개발한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일반적인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과 유사하게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빈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우리가 개발한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은 관이나 외부 펌프의 사용 없이도 고분자 구조체의 팽창 및 수축이 가능하도록 설계가 되어있다.
고분자 구조체의 빈 공간에 다공성 나노섬유(nanofiber)로 이루어진 초박막 매트(mat)를 위치시킨 후, 휘발성이 높으며 끓는점이 낮은 에탄올 혹은 냉매 계열(예: 3M사의 Novec 제품) 용매를 다공성 나노섬유 매트를 통해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가둬둔다(Fig. 6). 참고로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갇힌 용매는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형태로 설계가 되어있으므로, 용매의 기화에 의한 대기로의 용매 손실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어있다. 설령 탄성체의 극미세한 기공을 통해 용매의 기화에 의한 내부 용매의 손실이 일어날지라도, 언제든지 용매는 손쉽게 충전이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제작된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은 내외부 온도 변화에 따른 내부 용매의 상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부피 변화에 의해, 고분자 구조체의 팽창 및 수축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다공성 나노섬유 매트를 사용함으로써,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가둬진 용매가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으며, 상변화를 겪은 용매가 기체에서 다시 액체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균일한 분포로 구조체 내부에서 응결이 되게끔 유도할 수도 있다.[9, 10]
이러한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경우는 온도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지만, 외부 펌프 시스템이 없이도 작동이 가능하므로 소프트 로봇의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사용되는 재료가 굉장히 저렴하고 제작 과정이 매우 간단하여 비용 측면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최근 필자와 동료 연구원들은 외부 온도 변화에 의존하지 않으며, 내부 용매의 상변화 속도 및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들을 연구 중에 있다. 첫 번째 사례로는, 상온 근처에서의 끓는점을 지닌 용매를 사용함과 동시에 열전도도가 우수한 은나노와이어(AgNW)와 같은 나노소재를 탄성체에 결합시켜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11] 즉, 탄성체 내부에 일차원 형태의 은나노와이어를 결합하여, 탄력성 저하없이 전체 고분자 구조체의 강성을 강화할 수 있었고(콘크리트 구조물 내부에 철근을 박아서 전체 구조물의 강성을 높이는 것과 유사한 개념), 이 뿐만 아니라 열전도도가 우수한 은의 특성으로 인해 외부에서의 온도 변화에 따른 내부로의 열에너지 전도율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참고로 은나논와이어를 탄성체에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탄성체에 존재하는 극미세 기공들의 수와 분포도를 줄일 수 있었고, 이는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전반적인 작동 가능한 사이클(cycle) 성능도 눈에 띄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 사례로는,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금속 나노섬유로 이루어진 투명 전도성 필름을 주입한 후, 외부로부터 투명 전도성 필름에 전원을 공급하여 줄가열(Joule heating)에 의한 내부 용매의 상변화를 유도하는 기술이다. 참고로 이 기술은 현재 국제학술지 한 곳에서 리비전(revision)중에 있다.
특히, 필자와 동료 연구원들이 2016년에 개발한 금속 나노섬유 기반 투명 전도성 필름의 경우는 세계 최고 수준의 면저항값과 투과도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수 V의 낮은 인가전압에서도 수백도 이상의 필름의 발열이 가능하다.[12-15] 실제로, 현재 리비전 중인 해당 연구 결과에서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소형 배터리를 이용해서도 사람 손 크기의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을 손쉽게 작동시킬 수 있었다.
즉, 외부 온도 변화에 의존할 필요 없이, 투명 전도성 필름을 고분자 구조체 내부에 주입함으로써 내부로부터의 높은 열에너지의 공급이 가능하였다. 이는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작동 기반이 되는 용매에 전달되는 열에너지의 전도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가전압 조절을 통해 열공압식 소프트 로봇의 움직임 정도를 선택적으로 제어가 가능하게끔 구현이 가능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들은 현재까지 보고된 수많은 공압식 소프트 로봇 기술들 중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새로운 탄성체의 개발, 고분자 구조체의 내외부 구조의 다양화, 유체역학점 힘을 제공하는 방식의 다각화 등을 통해 로봇 성능의 개선 및 새로운 시스템 개발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 기관들에서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로봇은 핵심 기술 분야로서 여겨지고 있다. 인류 문명의 편의성과 기술 산업의 융합화 및 대량화를 위해 로봇 관련 기술들은 지속적으로 진화되어야 하며, 딱딱한 기계식 하드 로봇을 뛰어넘는 부드러운 소프트 로봇 관련 기술 혁명을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진정한 환경 및 인간 친화형 로봇 시스템의 구현이 앞당겨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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